[tfh.or.kr 펌]

4년전 프랑스 지단이 평가전에서 허벅지 파열로 인해 손가락 빙빙 돌리며 감독한테 교체 요청을 했을 때..

신문선 : 심판의 판정에 약간 불만이 있다는 표현같습니다.

차범근 : 교체해달라는 싸인입니다. 부상이 심한 것 같습니다.

이랬던 것으로 기억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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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축구팬이 신문선에게 쓴말.........차범근퐈팅!!!!



예전에 mbc에서 처음 신문선 송재익 두분이 해설을 맡아주셨을 당시 정말 축구를 잼있게 봤습니다.

입담들도 대단하시고 정말 축구를 보면서 이렇게 축구도 잼있게 느껴질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구요.

sbs로 이적(?)하신 후에도 두분의 입담과 재치는 마를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은 신 문 선 아저씨한테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mbc의 새로운 해설자로 차 범 근 아저씨가 활약하고 있습니다.
신 문 선 아저씨에 비하면 말주변도 없고 한국사람 맞는지 의문이 갈 정도로 더듬수를 놓기까지 합니다.

그게 현재 mbc방송국의 축구 해설가 차 범 근 아저씨의 본모습입니다.
그렇다면 해설가로서의 본모습이 아닌 인간 차 범 근 아저씨의 본모습은 무엇입니까?
그는 "영 웅"입니다.
한국의 축구 " 영 웅 "

두분께서는 마치 차 범 근 아저씨를 타 방송국의 해설자로서 바라보며 같은 업에 종사하는 라이벌쯤으로 바라보시는 것 같아서 상당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잘 못알아들으셨을까봐 노파심에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차 범 근 아저씨는 일개 방송국의 해설자가 아닙니다.
그는 우리나라 축구계의 "영 웅"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전 세계 축구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스타입니다.
오늘 아침 신 문 선 아저씨가 출연한 아침방송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아저씨는 한국축구 침체의 세가지 이유중 하나를 스타플레이어의 부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차 범 근 , 최 순 호. 허 정 무 등의 한국 스타플레이어가 있었지만 막상 세계 무대에 나가보니 세계 수준의 선수들과는 차이가 현격했다"라고 말입니다.
최 순 호, 허 정 무 아저씨들 이야기는 뭐 그렇다고 치겠습니다.
차 범 근 아저씨는 말이지요........
세계 수준의 선수였습니다.
세계 수준의 선수 중에서도 톱 클래스의 선수였습니다.

아마 아저씨도 아실겁니다.
마테우스가 인터뷰에서 한 말을...
"나는 아직 어리지만 차 범 근은 현재 세계 최고의 공격수이다."
분데스리가에서 같이 선수생활을 한 마테우스의 인터뷰입니다.
독일 대표팀 감독은 그 당시 차 범 근 아저씨에게 귀화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유럽의 축구계에서는 차 범 근 아저씨만 귀화한다면 서독 대표팀의 공격력 문제는 한순간에 해결될거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그 당시 분데스리가는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였습니다.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 중 한명이 차 범 근 아저씨였습니다.

UEFA컵을 두번씩이나 소속팀에 안긴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차 범 근 아저씨입니다.
그런 차 범 근 아저씨가 세계수준의 선수들에 비하면 기량 차이가 있었다는 말씀은 어불성설이 아닐까요?

단순히 차 범 근 아저씨를 타 방송사의 라이벌로 착각하시고 그를 평가하는 과오를 더이상 범하시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그는 우리나라 축구계의 살아있는 "신화"이자 "영웅"입니다.
차 두 리 선수의 기량이 모자란다면 정확히 그의 문제점을 짚어주십시오.
차 범 근 아저씨에 비한다면 아저씨의 선수시절 경력은 정말 미천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한순간이라도 그라운드에서 뛰었던 선배의 입장에서 차 두 리 선수에게 조언을 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미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 아저씨도 접하셨을 기사이겠지만 축구 선진국 독일에서는 한국 축구에 대해 16강 진출이니 월드컵 첫 1승이니 하는 문제보다는 차 두 리 선수가 월드컵에서 골을 넣을것인가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축구 선진국 독일은 아직도 차 범 근 아저씨를 그리워하며 아저씨의 아들에게까지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너무 글이 길었습니다.

또 잊어버리시고 흥분하실까봐 다시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차 범 근 아저씨는 신 문 선 아저씨와는 레벨이 다른 분입니다.
두분께서 좋아하시는 비유를 들어 말씀드려 볼까요?

은자 몇냥에 팔려가 남의집 머슴살이 하며 마당 쓸어주던 마당쇠가 신 문 선 아저씨라면 아저씨가 마당쓸때 글 읽던 주인집 도련님은 차 범 근 아저씨입니다.
마당쓸며 가끔씩 도련님 글 읽는 소리를 귀동냥해 자기 이름 석자 정도는 쓰게 된 머슴이 신 문 선 아저씨입니다.

개화를 하고 신분해방이 되어 이제 더이상 노비신분이 아닌 아당쇠가 신 문 선 아저씨입니다.
그바람에 예전에 자기집 마당이나 쓸던 마당쇠랑 같은 신분이 되버린게 차 범 근 아저씨입니다.

현역시절 네가 아무리 잘 나갔다고는 하지만 이제 똑같은 신분(해설가)이다라고 아저씨께서는 차 범 근 아저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지도 모르겠지만 아저씨는 차 범 근 아저씨에 비한다면 그저 대문앞이나 지키고 마당이나 쓸던 마당쇠입니다.

신 문 선 아저씨가 지금 무슨 축구후진국의 실업 2부팀의 무던한 수비수였다면 차 범 근 아저씨는 레알마드리드나 브라질 혹은 프랑스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였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요.

세계 축구 선진국에서도 알아주는 차 범 근 아저씨를 일개 방송국의 해설자가 무시를 한다면 결국 무시당하는건 차 범 근 아저씨가 아닌 신 문 선 아저씨가 될 겁니다.

두분께서 축구중계에 듣는재미라는 크나큰 충격으로 한국국민들로 하여금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많은 사람들을 축구장으로 또 TV앞으로 끌어모았다는 점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아저씨들의 공로입니다.

신 문 선 아저씨의 말씀대로 스포츠는 돈이더군요.
거액의 스카우트비를 들여 이제는 축구해설가와 캐스터를 모셔가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돈을 받고 돈을 준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건 프로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수 없습니다.
저도 그점에서 아저씨들의 열정어린 모습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제 독일과 카메룬과의 경기에서 두분이 이야기하셨듯이 아저씨들의 수준은 축구후진국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다른나라 선수들을 비방하고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을 서슴치 않으며 자국 선수들의 피땀어린 노력마저도 두분 아저씨들의 그 대단한 입담앞에선 한낱 우스갯소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아저씨들은 프로이지요.

아저씨들이 프로이기에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위에 아주 오래전의 글에서 저는 차 범 근 아저씨의 해설이 신문선 아저씨의 해설에 비하면 참 모자란 점이 많아 보이는게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누구의 해설이 더 훌륭했는지는 이미 수많은 네티즌들을 통해서 판명이 된것 같군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재미...... 물론 중요하지요.

하지만 결국엔 사소한 재미보다는 진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선 아저씨.... 아저씨는 차 범 근 아저씨에게 두번 졌습니다.
축구선수로서의 인생은 비교한다는것 자체가 아저씨들의 농담보다도 더 우스운 일이겠지요.
차 범 근 아저씨 앞에서 과연 신 문 선 아저씨가 "나도 축구선수였다"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아저씨는 하겠지요.
"나도 과거 국가대표의 명수비수였다!"
이렇게요.

그럼 차 범 근 아저씨는 그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와 어눌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 그럼요. 신 문 선씨도 훌륭한 선수였었지요."라고 말해주겠지요.
하지만 차 범 근 아저씨의 대답에는 정말 차 범 근 아저씨의 진심이 담겨져 있을 것입니다.
누가보기에도 자신보다는 미천한 경력의 선수라고 말할 가치도 없는 선수였지만 과거 선수시절 신 문 선 아저씨가 흘렸던 땀과 눈물의 가치를 세계적인 대스타였던 차 범 근 아저씨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것입니다.

어제 아프리카 선수들을 비하하면서 축구 후진국에서는 감독을 수도없이 갈아치운다는 말씀을 하시던데요.

송 재 익 아저씨가 과거 우리나라도 프랑스월드컵때 감독을 중도 해임시킨 경력이 있다고 겸연쩍게 말씀하시더라구요.
신 문 선 아저씨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그 일은 오히려 잘한일이라고 평하는 축구전문가들이 많이 있다구요.

저는 축구선수가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축구선수라면 제 꿈은 나중에 선수생활을 마감하고나서라도 그라운드에 남아 후배들을 위해 축구에 대한 열정을 다 받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감독이라는 위치....

특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위치....
참 고난의 길이 아닐수 없겠지요.
이미 알면서도 그 험난한 길을 차 범 근 아저씨는 묵묵히 갔습니다.
이미 세계에서 알아주는 대스타로서 뭐하나 부러울게 없는 차 범 근 아저씨가 왜 굳이 그 험난한 길을 가서 그런 불명예를 뒤집어 썼겠습니까?

신 문 선 아저씨...
가슴에 손을 얹고 아저씨 마음속에 휑하니 뚫려 있는 그 무언가를 느껴보세요.
분명히 그 무언가가 느껴질겁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세요?
그건 축구에 대한 " 진 정 한 열 정 과 사 랑 " 입니다.

그게 차 범 근 아저씨와 신 문 선 아저씨의 차이점입니다.
한때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였던 독일 분데스리가 최고의 공격수로 세계에 그 이름을 떨쳤던 차 붐 의 화려했던 선수시절과 그저그런 국내의 수비수였던 아저씨의 선수시절보다도 더 큰 차이점은 제가 말씀드린 축구에 대한 " 진 정 한 열 정 과 사 랑 " 이라는 것이지요.
분발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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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는 차범근의 약력.. 제일 밑에 글이 가슴 찡하내요..






@ 77년 대통령배 축구대회(박스컵). 말레이지아 전 1:4로 뒤지던 상황.종

료 5분 남겨놓고 3골의 소나기 골.



@ 79년 프랑크 푸르트 입단 8월 당시 세계 최고 리그로 불리던 분데스리

가 데뷔.데뷔전 상대는 도르트문트.스타팅으로 75분까지 뜀. 어시스트 기록.최고권위 축구전문지 'KICKER' 선정..주간 베스트11.



@ 세번째 경기 슈투트가르트 전. 헤딩으로 승리결정 골. KICKER 선정 이

주일의 골.



@ 네번째 경기 바이에른 뮌헨 전. 그라보스키 어시스트로 선취골.



@ 다섯번째 경기 최강호 보루시아MG 전. 한가운데 돌파에 이어 찬 공,


쪽 포스트 맞고 골. 선취골. 세경기 연속 골.

이날 KICKER, 처음으로 차붐이라는 단어 씀.



@ 9월 강호 함부르크 전. 페차이의 어시스트를 받아 강슛. 그라보스키 센

터링, 헤딩 슛. 30M 중거리 슛. 첫 해트트릭 기록.11월 일본의 오데

쿠라가 소속된 쾰른 전. 두 동양인의 대결로 관심 집중.차범근 선취

골, 결승골로 두골 기록. 오쿠데라 헛발질 7번.

차붐 대승. 프랑크 푸르트 3:1로 승리.



@ 일간스포츠 톱기사 이때 부터 MBC 차범근 경기 녹화방송 시작. 매주


요일 밤. 최고 시청률.



@ 12월 UEFA 컵 출전. 첫번째 경기 레알 마드리드를 맞아 차, 선취골을

넣었으나 1:1 무승부..두번째 경기 AC밀란 전.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강슛. 포스트 맞고 튀어나왔으나,골대 5초이상 흔들림. 특종 기사실

림. 3:2로 프랑크 푸르트 승리.



@ 80년 3월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1차전. 당시 20세의 나이

로 '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마테우스(90년 월드컵 MVP),갈색 폭격

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신문 톱기사.



@ UEFA 컵 결승전. 보루시아 MG와 2차전. 역시 마테우스 차붐 전담 마크.

마테우스 속수 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사이드 마테우스 여유롭

게 제치고 어시스트. 1:0 프랑크푸르트 승리. 차붐, 이날의 선수. 원

정팀 득점 우선권으로 프랑크푸르트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



경기 후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범근은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다"



@ 79~80 시즌 득점 랭킹 7위 랭크. 세계 상승세 베스트 4 선정됨.세계축

구 베스트 11 선정됨. 연봉 독일에서 세번째 액수.

협상 타결.독일 대표팀 감독 차붐 귀화 추진. 실패. 81시즌 레버쿠젠

과의 경기에서 겔스도프에게 육탄공격 받아 심한 부상.

프랑크푸르트 팬들 레버쿠젠까지 가서 겔스도프 살해 위협 소동. 경찰 출동.



@ 83년 레버쿠젠으로 트레이드.프랑크푸르트 팬들 울음바다.85~86시즌


데스리가 MVP 및 득점 4위.86년 한국대표팀 선수로 멕시코 월드컵 출전



@ 88년 다시 UEFA컵 출동. 차붐 스페인 에스파뇰을 맞아 극적인 3:3 동점

골 터뜨림.5만 관중 차붐! 환호. 승부차기로 레버쿠젠 역시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UEFA컵 우승.



@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출장 최다골 기록 분데스리가 308경기 98골...

차범근 선수가 세운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기록은 스위스

출신 사퓌자 선수에 의해 지난 99년에 경신. (106골/218경기)......




<안티축구협회 홈페이지에서 발췌>



다만 한국인의 기상과 불굴의 의지를 나타내고 축구에 대해서 세계정상

에 우뚝 서고 축구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한 차범근씨는



"왜" 조추첨자로 선정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차범근이 한 일에 대해서는 "딴지일보"에서 기막히게 묘사를



해놓았기에 이를 인용한다



느낌이 잘 안오신다..?



박찬호가 데뷔 첫해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어 데뷔하자마자 메이저

리그를 통털어 투수부문 7위의 성적을 거두고, 그 다음 해 동양인 최

초의 사이영상을 수상하고, 얼마 후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MVP

를 먹고,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결승에 두번이나 진출시키고 그때마다 마

지막 7차전에서 완벽한 투구로 승리투수가 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그리고는 그가 마운드에 등장하면 관중들이 전부 찬호를 연호하며 박수를

치고,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유니폼이 영구전시되고 도대체

박찬호를 모르는 미국시민이란 없는 그런 상황... "



차범근이 한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조선일보에서조차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

에 선정한 위인이다.1998년 독일 축구역사가협회에서는 20세기최고의 아

시아선수로 차범근씨를 선정했다.1999년 축구잡지로는 최고의 명성을 자

랑하는 월트사커지는 차범근씨를 잊을수 없는 100대 스타로 선정했다.그

가 차지했던 분데스리가 MVP 는 지금의 세리에 리그의 MVP나

다를바가 없다.

80년에는 세계축구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인 차범근인 것이다.그가 바로 변변한 홈페이지

하나 없이 매장당해버린 대한민국이 낳고 대한민국이 버린 차범근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국내 축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내고
가장 위대한 선수인 차범근.



차범근 축구교실의 강태풍군은 한 인터넷까페에 차범근씨의 사진과 함께
이런글을 올려놓았다.


저 뒤에 망치들고 계시는 저분 저분이 바로 우리 감독님 이시다.우리다칠

까봐 망치들고 얼음 깨는 저분.

저분이 바로 세계속의 갈색 폭격기 우리 감독님이시다."


그리고 저기 작은 축구교실에서 아이들이 다칠까봐 묵묵히 얼음을 깨고

있는 허리숙인 저 사람이 바로 우리가 묻어버린 ..

그를 버린 한국축구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차범근인 것이다


[펌] 차범근과 신문선의 해설 차이



아나운서 : 저 정도에서 슛은 좀 무모하지 않나요

+++신문선 : 지금상황은 1:1돌파에의해 좌쪽으로 패스하여 수비를 교란시키고 공격진들이 침투하여 숫자를 늘린 후에 인플런트로 센타링을
하여 가슴으로 트래핑을 한후 뒤 쪽으로 내주면 달려오던 선수가
골키퍼방향을 읽고 반대방향으로 차주면 기회가 생깁니다.
우리선수들 너무 서두르지말고 차근차근 해야 기회가 생깁니다.

제가 대학시절 ...주저리주저리..

아나운서 : 저 정도에서 슛은 좀 무모하지 않나요

+++차범근 : 맞습니다. 왼쪽이 비었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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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팅한 공이 하늘로 치솟자

신문선 : 운동역학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슈팅을 하는순간에 디딤발과
차는발 사이에 밸런스가 제대로 맞추어지지 않으면서 발등과 볼의
임팩트 지점이 정확하지 않았기때문에 저렇게 뜨는 겁니다 제가
항상 말씀드리는거지만 축구는 어디까지나 과학이고 제가 선수시절때.

차범근 : 킥 하기전 자세가 불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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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오자

신문선 : 우리의 뇌는, 눈으로 보는 정보를 인식하죠.
망막이 인식한 '비'라는 피사체가 시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되면
선수들은 긴장을 느끼게 됩니다. 비가 많이 오는 경우에는, 그것을
인식한 뇌의 해마 부분이 자극을 느껴, 그것과 연결된 대퇴부 근육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기도 하죠.

제가 국가대표 시절때.........

차범근 : 비가 많이 오네요.
선수들 플레이에 약간 지장이 있을 수 있어요



덧붙여서...

마이클 오웬:나는 차붐 선수를 존경한다. 난 어릴 때부터 차붐을 보고 자라왔다. 나도 그 선수처럼 되고 싶다

미하엘발락:여기가 차붐의 나라입니까?너무 와보고 싶었습니다.그는 나의 우상입니다(우리나라를 방문한 후)

마테우스(1990월드컵mvp,그리스 PAOK 살로니카 감독):차범근이 세계 최고의 공격수인 건 분명하다. 그리고 나의 자만을 깨우쳐 줬다

프란츠베켄바워(독일월드컵조직위원장):난 차붐을 낳은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가 독일에 있었다면 어김없이 독일 대표팀에 넣고 싶다

파울로말디니:내가 그런 공격수랑 붙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다

펠레:붐은 진정으로 축구를 할 줄 알고 즐길 줄 안다

나 자신은 어느 정도 성공한 공격수로 평가 받지만 차붐 정도는 아니다  - 클린스만(현 독일 대표팀 감독)  
백혈병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던게 고욕이던 나였다.......

단지 영화에서나 볼수 있었던 그 무시무시한 병이 나에게 오다니.....

골수를 이식 받으면 살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있었지만...

부모님의 골수는 이식불가였고 형제가 없던 나에게,

맞는 골수 찾기는 거의 불가능이였다....

외아들만 둔 부모님이 원망스러운적도 있었다...

고통을 잊으려 진통제와 수면제를 수도없이 맞아야 했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잘못한 일들을 떠올리게 하셨다...

그렇게 죽음을 기다리던 어느날...

나와 골수가 맞는 사람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그 희망은 곧 그가 축구선수라는 점에서,

다시 사라져버리기 시작했다.....

무리한 운동을 해야하는 축구선수가.....

그것도 시즌중에....나에게 골수를 이식해줄리는 만무했다.....

나는 모든걸 포기했고..........

수면제에 기대어 다시 잠을 청했다.......

'아들아 일어나렴, 너는 살수 있단다 어서 일어나보렴..'

'무슨 말이에요........'

'그 분이 너에게 골수를 이식해 주신데.....어서 준비하자'

이건 꿈일까요....??

골수를 이식해주기로 한 축구선수는 나에게 잘해보자며

악수를 청한다....

하지만 눈물에 가려 그가 잘 보이지 않는다........

노란 금발빼고는...그를 볼수 없었다......

간단한 검사후........그와 나는 수술실로 들어갔고....

마취에 취해.....고통에 취해......쓰러져버린 나는.....

회복실에서 깨어났다.........

내 옆에 그가 있었다......그에게 가고싶지만....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단지 그를 위해 맹세를 할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주신 새 생명.....이를 꼭 악물고 다시 일어나......

이웃에 봉사하며 살겠습니다.......당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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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나는 성공적으로 끝난 수술로 서서히 회복할수 있었고....

하루하루 건강해져 가는 내 모습에 나는 세상을 다 가진듯 하였다.....

어느날....

잠을 자고 있는 나에게 한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였다.....노란금발머리.......세상 그 무엇보다도,

노랗고 아름다운 그 금발머리를 지닌 사나이가 날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감사해요.......감사합니다.....'

'누구라도 이런 결정을 했을거다, 당연한 일을 한것 뿐이야'

그는 당연한 일을 했다며 나에게 웃어보였다.....

나 보고 마음 쓰지 말라는듯.......

그는 나에게 따듯한 미소와 힘내라는 뜻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내 병실을 나갔다......절뚝절뚝.........절뚝절뚝 거리며.......

나는 다시 울음보가 터졌고.....그를 쫓아 가서 물었다...

'축구 다시 할수 있어요.....?? 다시 할수 없으면 어떻해...나 미안해서 어떻해......'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내가 비밀 하나 갈켜줄까?'

'무슨 비밀이요...?'

'나는 심장이 2개란다......이런일로는 아무렇지도 않아...그러니 울지 말아라'

'그럼 절 위해......제가 미안해 하지 않게....최고의 선수가 되어줄수 있나요?'

'물론이지, 너도 날 위해 약속 하나 하자.....내가 널 위해 한일이 헛되이 되지 않게



언제나 웃고 건강해지렴'

'네....물론이죠....꼭 건강해 져서......꼭 최고의 선수가 된 당신의 경기를 보러 갈게요....'

'널 위해서라도 최고의 선수가 되마..'

그는 환한 웃음을 선사한뒤 떠나갔다...........





'아 참, 나는 아저씨 이름도 모르잖아......이름이 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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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네드베드'



그리고 몇년후 그는 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나는 유벤투스의 팬입니다.....나에게 왜 유벤투스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 한마디........그가 있기 때문에....





-영원한 당신의 팬-
원문
http://soccer1.ktdom.com/bbs/zboard.php?id=soccer4u2&no=1730
김성택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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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반말입니다. 양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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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C의 공개적 언어폭력에 격분해서 좀 말도 안되는 리플도 마구 써제겼지만, 어째 찌라시에 낚인 느낌이 든다.....-_-;; 어쨌건 그가 했던 발언 중에 40%에 대해서는 별로 동감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는 다른 것이 나는 40%가 아니라 20% 아래로 본다. 나는 우리나라의 대표팀의 실력을 남들만큼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토고전 때의 예상은 전에도 썼다시피 한 방 먹고 질질 끌려가다 1:0으로 패하는 거였는데, 선수들이 분투하면서 예상을 뒤집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생각하는 프랑스전이나 스위스전의 전망이 밝아지진 않았다. 공은 둥글지만 실력차라는 것은 현존하고, 프랑스 선수들이나 스위스 선수들 중에 한국전에 태업할 정도로 썩은 정신의 선수들이 존재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프로니까.

사실, 토고 정도는 쉽게 이겨야한다는 언론과 사람들의 설레발이에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토고 선수들이 유럽 하부리그 선수들이라면서 월드컵 최약체이니 뭐니 하면서 깔아뭉갰지만, 정작 언론과 국민들은 현재 대표팀의 반 이상, 그 중 수비진의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K리그파 선수들을 유럽 하부리그 이하의 선수들로 평가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런 선수들이 대표팀에 들어가면 갑자기 EPL 수준으로 실력이 향상되어서 토고 정도는 쉽게 쓸어버릴 것으로 생각하니, 정말 웃기지도 않은 노릇이다.

2002년의 히딩크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망신만은 당하고 싶지 않았던 축협과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리그를 폐업하고 선수를 데려다가 300일 넘게 차출해서 말 그대로 프로팀 FC Korea를 탄생시켰다. 거기에 홍명보, 유상철, 황선홍 등의 유명했던 선수들, 차두리, 이천수등 대학 선수들까지 데려다가 A매치를 수없이 경험하게 함으로서 프로리그 경험 하나 없는 국대 선수까지 탄생시켰다.(그 결과는 현재 고등학교나 대학 선수에서 슈퍼루키 뽑아 국대에 보내면 한국 축구의 빛의 될 거라는 현실과 소년만화를 혼동하는 증상이다.) 그렇게 히딩크는 2002년 월드컵에 뛰어들었고, 홈에서의 어드밴티지와 자신의 지도력으로 만들어낸 프로팀 'FC Korea'를 이끌고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한국은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신화가 아니었다. 남들이 십수개의 프로팀을 운영하는 동안 단 하나의 프로팀을 돌려 남긴 당연한 결과였다.

2006년, 본프레레에게서 팀을 넘겨많은 아드보캇에게 주어진 것은 6주간의 전지훈련과 짧은 소집기간 뿐이었다. 그것은 당연했다. 2002년식으로 계속 했다가는 정말 한국축구가 끝장나는 것은 그리 멀지 않을테니까. 그런데 팬들은 2002년의 환상에 빠져서 선수들의 일사분란한 조직적인 모습과, 강인한 체력과 그에 따른 전술을 요구했다. 하지만 축구팬들이 오랫동안 버려운 K리그에서 그런 선수들이 나올리 없었다. 피지컬 트레이너만 해도 2003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리그에서 체력 충만한 선수가 나올리 만무했고, 제대로 된 지도자 코스도 갖추지 못한(아니, 라이센스 없는 감독들도 수두룩했던) 리그에서 선수들이 조직력을 배울리 만무했으며, 고급전술을 구사할 수 있을리는 더더욱 만무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썩어가는 기본은 보지 않은채 유럽리그에 진출한 박지성, 이영표, 이을용등 하늘의 별만을 칭송했다.

거기에 연고이전 2연참에 드래프트 제도까지 시행 되면서 K리그는 자칭 축구팬들의 무관심속에 끝없이 뒷걸음쳤고, 그나마 K리그에 어느정도 애착을 가지고 있던 나조차 입맛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선수들은 나날이 줄어가는 관중들 속에서, 무관심 속에서 힘겹게 뛰었다.

내가 힘이 없어서 선수들을 연고이전이나 밥먹듯 하는 썩은 리그에서 뛰게 만들었다.
내가 힘이 없어서 감독들이 제대로 된 연수조차 받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힘이 없어서 선수들을 외면과 무관심 속에서 뛰게 만들었다.
내가 힘이 없어서 선수들을 4년만에 한 번씩 나타나는 찌찔이들에게 조롱이나 받게 만들었다.

나는 대한민국 대표팀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떻게 싸워왔는지, 어떻게 뛰어왔는지 보았기 때문이다. 타칭 축구팬이라는 '내'가 힘이 없어서 벌어진 일들.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고전이 시작되었다.


허구헌날 욕먹는 수비수들인 김영철과 최진철은 좋은 선수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세계적인 선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개인마킹과 제공장악 면에서는 아데바요르가 문제가 아니었지만, 수비라인을 무너뜨리는 스루패스와 스피드를 십분 활용한 돌파를 막는데에는 무력했다. 경험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K리그에서는 창의적인 패스와 조직적인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그것을 배우거나, 또는 실천하려고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할 수 없는 일이다. 비싼 돈 투자해도 아무도 보러오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은 기억 저편에 묻어버린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는 선수들의 스피드와 집중력 부족을 탓한다. 모든 책임은 선수 개인이나 감독이 지고, 근본은 묻혀버린다.

그나마 좋은 환경에서 뛴 박지성이나 이영표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어떤 의미로 그들은 2002년 월드컵의 최대 수혜자이다. FC Korea에서 세계적인 축구를 체험하고, 실제로 유럽에서 뛰게 되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그 동안 소외된 모든 선수들의 희생이 그들의 신화를 탄생시켰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쨌건 그들은 그들의 책임을 진 셈이다. 다른 선수들이 받을 관심과 스포트라이트를 모조리 가져간만큼, 그 책임을 지고 최고가 되어주었으니.

이른바 축구팬들에게 입천수니 혀컴이니 욕먹던 이천수가 K리그 사기유닛이라는 별칭을 증명하며 한국의 2006년 월드컵 첫골을 터뜨렸다. 그 동안 부침을 거듭하던 안정환이 멋진 골로 역전에 성공했다. 그리고 토고는 필드 플레이어 9명 중 1명만 최전방에 서고 나머지는 본진에 들어가 박혀버렸다. 지고 있는 팀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전술운영인 셈이었다. 그리고 한국 선수들은 볼을 돌렸고, 팬들은 욕설과 야유를 퍼부었다. 비겁하다고, 더러운 플레이라고, 투혼이 보이지 않는다고.

정말 그런가, 그들은 공격이 하기 싫어서, 의욕이 없어서 볼을 돌렸는가? 내 눈에 보인 것은 공격루트가 보이지 않고, 그나마 억지로 공격하려고 했다가는 수비에 부담을 줄까봐 이기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전전긍긍하는 선수들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는 원정 경기, 그 의미는 선수들에게는 엄청난 의미였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결정하는 것은 지구 반대쪽에서 통닭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선수들을 안주삼아 씹어대는 축구팬이 아니라, 31도가 넘는 경기장에서 90분의 경기를 소화하고 있는 선수들과 그들과 함께하는 코칭스텝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건 간에 그것을 같이 마지막까지 지켜보면서 응원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났다. 결과는 2:1 승리.


사람들은 그 전력으로 프랑스와 스위스를 이길 수 없다고 대표팀을 비난하고 타박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그들의 비난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유럽파가 좀 섞여 있다고 해도 한국 대표팀의 수비진외 선수단의 상당수는 그들이 프랑스 5부리그 취급도 안하는 K-리그 선수들이였으니까. 그들이 짓밟고 버려둔 선수들이었으니까. 그런 그들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팬들을 위해 바다 건너에서 뛰고 있었다. 31도의 고온과 60%가 넘는 습기를 이겨가며.

이제 그들은 경기장을 가득채운 관중과 높은 경기수준을 경험해온 프랑스와 스위스 선수들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플레이도 있을 것이고, 압박도 가해질 것이다. 그래도 그들을 최선을 다해 뛸 것이다. 자신을 위해, 팬들을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네 글자와 아직도 그 네 글자를 잊지 않은 교민들을 위해.

그러기에 나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경기를 경기를 볼 것이다. 그리고 응원할 것이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던, 어떤 결과를 낳던 간에, 그것은 그들이 최선을 다한 결과이고, 아름다운 기록으로 남을 테니까. 연예인의 제멋대로인 발언으로, 자칭 축구팬들의 욕설로 끊임없이 상처받고 아파해온 선수들이기에, 끝까지 지켜볼 생각이다. 선수들을 욕하고 감독을 비난하며 한국 축구를 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것은 내 방식이다. 이 월드컵에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일본인 1억, 중국인 13억의 비난보다도 훨씬 지독하고 가혹한, 한국인 4800만의 비난에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길 바랄 뿐.


힘들고 어려운 싸움이 될 남은 경기들.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돌아오길. 남들이 외쳐대는 확률이나 %는 중요하지 않다. 0.000000000001%라 해도 제로가 아니고, 만약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100%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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